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 주식을 처음으로 직접 사들였다. 그런데 매수 규모가 묘하다. 딱 48억 원어치. 50억 원을 넘기지 않은 그 숫자에는 이유가 있었다.
SK하이닉스는 30일 최 회장이 장내매수로 보통주 3620주를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이날 종가 132만2000원 기준 약 47억9000만 원 규모다. 최 회장이 개인 명의로 SK하이닉스 주식을 보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0억을 넘기면 ’30일’을 기다려야 한다

열쇠는 2024년 7월 시행된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다. 상장회사 임원이나 주요주주가 자사 주식을 발행주식총수의 1% 이상 또는 거래금액 50억 원 이상 거래하려면, 거래 개시일 30일 전까지 매매 목적·가격·수량을 미리 공시해야 한다. 대주주의 대규모 지분 변동이 일반 투자자에게 예고 없이 충격을 주는 일을 막기 위해 도입된 장치다.

바꿔 말하면 50억 원 미만은 이 의무가 면제돼 곧바로 살 수 있다.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터진 직후, 30일을 기다렸다가 사는 것과 오늘 당장 사는 것은 메시지의 무게가 다르다. 재계에서 이번 48억 원을 사전공시 없이 즉시 책임경영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정해진 규모로 보는 이유다.
한 가지 더 있다. 이 제도는 거래 개시일 기준 과거 6개월 거래분을 합산해 계산한다. 이번에 50억 원 한도를 다 쓰지 않은 만큼, 향후 추가 매수에도 여지를 남긴 셈이다.
“샀다 팔았다 하지 말라”던 그 발언

시점도 상징적이다.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달 25일 298만7000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찍은 뒤 한 달여 만에 반토막 아래로 떨어졌다. 이날도 5.64% 하락했다.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하고도 시장 기대치에 못 미쳤다는 이유로 주가가 밀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최 회장은 최근 SK하이닉스 주가와 관련해 “메모리는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두면 우상향으로 간다”며 “샀다 팔았다 하지 말고 가만히 갖고 있는 게 재산 보전에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뒷받침한 모양새다. 회사 안팎에서는 중장기 성장성 대비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판단과 책임경영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48억이 던진 신호, 시장은 받을까

총수의 자사주 매입은 통상 ‘내부자가 보는 회사의 가치’를 시장에 알리는 신호로 읽힌다. 다만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이 900조 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48억 원은 지분율에 영향을 주지 않는 상징적 규모다. 실제 수급보다 메시지에 방점이 찍힌 매수인 셈이다.
폭락장에서 총수가 직접 던진 신호를 시장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다음 주 주가가 답할 몫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그 신호를 30일이나 미루지 않기 위해, 매수 규모가 50억 원 앞에서 멈춰 섰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