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청구서가 한국을 향해 쏟아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국산 대공미사일 천궁-Ⅱ의 우크라이나 지원, 반도체 추가 투자까지 안보와 통상을 가리지 않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훈련 축소 지시와 호르무즈 파병 논란을 다룬 데 이어, 왜 유독 한국에 요구가 집중되는지 구조를 짚어본다.
“3만9000명 지켜주는데” 트럼프의 논리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백악관에서 “우리는 3만9000명의 병력을 두고 김정은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주고 있는데, 아주 쉬운 이란 군사작전에서 우리를 돕지 않겠다는 것이냐”며 “참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달 30일에는 한국이 이란 관련 지원 요청에 부정적이었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고, 이달 4일에는 한국이 천궁-Ⅱ를 우크라이나에 판매해야 한다는 워싱턴포스트 칼럼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주한미군 규모는 실제와 다르다. 폴리티코는 약 2만8500명, CNN은 미 국방부 자료를 인용해 3월 말 기준 2만6589명이라고 전했다. CNN은 방위비 관련 발언에도 부정확한 주장이 여럿 포함됐다고 팩트체크했다.
왜 하필 한국인가

동맹 가운데 유독 한국에 요구가 몰리는 배경으로는 세 가지가 꼽힌다. 첫째,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와 주한미군 의존도다. 안보를 미국에 기대는 구조상 기여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는 점을 트럼프 대통령이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와 조선을 동시에 갖춘 미국 공급망 재편의 핵심 상대다. 관세를 지렛대로 미국 내 생산을 압박하기 좋은 상대라는 얘기다.

셋째, 한국은 이미 35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 패키지를 약속한 상태다. 미국 입장에서는 여기에 청구서를 얹기가 가장 수월하다. 현 정부 외교안보 정책 수립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미국이 안보와 통상을 한데 묶어 한국이 거절하기 어려운 분야부터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장관도 세계 무역 보호가 미국만의 책임이어서는 안 된다며 동맹의 동참을 요구했다.
정부는 ‘검토’로, 이란은 ‘경고’로

정부는 파병과 반도체 추가 투자 모두에 신중했지만 결국 검토와 논의로 돌아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4일 한반도 대비 태세에 큰 손상이 없는 범위에서는 운신할 수 있다고 했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반도체 투자를 제기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인정했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한러 관계 악화와 북한의 추가 파병 자극을 우려해 그간 비군사적 지원 원칙을 지켜온 사안이다.
변수는 안팎에서 겹친다. 파병에는 국회 동의가 필요한데 여당 안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이란은 한국이 호르무즈에서 이란에 맞설 경우 군사적 침략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 동맹 신뢰가, 수용하면 교민과 선박 안전이 흔들리는 이중 딜레마 속에서 정부의 선택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