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서울 강남구 자곡동의 한 아파트 매물에 낯선 문구가 붙었다. ‘집주인 대출 6억’. 매매가 20억 원짜리 아파트를 팔면서, 은행이 아닌 집주인이 매수인에게 6억 원을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중개업계에 따르면 매수인은 12억 원의 잔금만 치르고 나머지 6억 원은 집주인에게 이자를 내는 구조다.
은행 창구가 아니라 집 파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 집을 사는, 이른바 ‘셀러 파이낸싱(매도인 금융)’이다.
은행 대신 집주인이 빌려준다

방식은 이렇다. 매수인이 잔금을 다 마련하지 못하면 매도인이 부족분을 빌려주고, 그 담보로 해당 주택에 근저당권을 설정한다. 이자는 통상 시중 금리 수준으로 약정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같은 규제는 금융회사 대출에 적용되는 것이라, 개인 간 금전 거래에는 직접 적용되지 않는다.
배경은 강력한 대출 규제다. 현재 규제지역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15억 원 이하 최대 6억 원, 15억 초과~25억 원 이하 4억 원, 25억 원 초과는 2억 원에 불과하다. 은행 문이 좁아지자 올해 봄부터 반포·강남 일대에서 이런 거래가 되살아났고, 한 매수인은 “강남권에서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 종종 있는 일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2020년 15억 초과 주택 대출이 전면 금지됐을 때도 확산했던 방식이다.
대통령 거래가 쏘아 올린 유행

수면 아래 있던 이 거래법이 전 국민 앞에 소환된 계기는 이재명 대통령 부부의 분당 아파트 매각이다. 29억 원에 팔면서 매수인들을 채무자로 한 17억7000만 원의 근저당을 설정한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에서는 “대출 막힌 국민은 뭐냐”는 반응과 함께 이를 본뜬 매물 글까지 등장했다. 청와대는 매수인의 개인 사정에 따른 정상 거래이며 10월 말 잔금 후 근저당을 말소한다고 해명했지만, 야당에서는 ‘더불어근저당’이라는 조롱까지 나왔다.
합법과 편법 사이.. 규제가 만든 풍경

분명히 할 점은 이 방식 자체가 불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소유권을 먼저 넘기고 잔금 채권을 근저당으로 담보하는 것은 법이 허용하는 거래다. 그러나 한 부동산 전문가는 “강력한 대출 규제가 만든 비정상적 거래 구조로, 법을 어긴 건 아니지만 편법을 썼다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위험도 있다. 이자율과 상환 조건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세무 문제나 민사 분쟁으로 번질 수 있고, 자금 출처 소명이 안 되면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결국 현금 여유가 있는 집주인과 소득 높은 매수인만 쓸 수 있는 우회로라는 점에서, 규제가 서민의 사다리는 걷어내고 ‘아는 사람들’의 샛길만 남긴 것 아니냐는 씁쓸한 물음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