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전 2주 만에 태국과 캄보디아가 또다시 무력 충돌에 돌입했다. ‘전쟁 선포’라는 자극적 구호 뒤엔 두 정권의 위태로운 정치 사정이 숨어 있다.
이번 충돌은 국경을 둘러싼 역사적 갈등을 빌미 삼아 벌어진 정치적 연극에 가깝다. 특히 캄보디아는 내부 민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계산된 도발을 감행했다.
100년 묵은 지도의 저주

태국과 캄보디아 간 국경 분쟁은 단순한 땅따먹기가 아니다. 문제의 뿌리는 1904년과 1907년 프랑스와 시암 왕국 사이의 조약과, 그에 기반한 부정확한 지도에 있다.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포함한 지역의 소유권을 두고 양국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려왔다. 이 모호함은 갈등의 불씨로 남아, 오늘에 이르러 폭발한 셈이다.
독재에 대한 분노, 외부 적으로 돌리다

캄보디아 훈마네트 정권은 무너져가는 경제와 민심을 돌리기 위해 전통적인 방법을 택했다. 태국을 희생양 삼아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방식이다.
태국의 카지노 출입 금지 조치와 관광객 급감으로 경제가 흔들리자, 정권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발이 거세졌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 전통적 외부 위협론을 급히 소환한 것이다.
태국 군부, 위기 속 반사이익으로 급부상

이 도발은 태국 군부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정치 카드였다.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캄보디아를 응징하며, 평소 지지율에 허덕이던 군부는 단숨에 90%대의 지지를 확보했다.
민간 정부와의 권력 투쟁에서 우위를 점한 셈이다. 군의 응징은 민심을 흡수하는 데 효과적이었고, 국민들은 일시적 쾌감에 열광했다.
정권 간 친분이 부른 이례적 낙마 사건

흥미로운 점은 태국 전 총리 패통탄이 캄보디아 총리와의 지나친 친분으로 낙마했다는 것이다. 훈센을 ‘삼촌’이라 부른 통화 내용이 유출되며 여론은 등을 돌렸고, 결국 해임됐다.
이 사건은 훈센이 태국 내부 권력을 분열시키려는 치밀한 복수극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내부 교란 전략은 양국 관계를 더욱 냉각시켰다.
하지만 불씨는 남아있다
양국 모두 명확히 알고 있다. 체급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을. 태국은 상위 25위권 군사력을 보유한 데 반해, 캄보디아는 95위 밖의 전투기 하나 없는 군대 수준이다.
해군력에서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민심 돌리기용 국지 충돌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 충돌은 끝이 아닌, 반복의 서막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