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 근조화환 30여 개가 줄지어 늘어섰다. 개인투자자 단체 ‘주식시장정상화를위한모임’이 보낸 것으로, 화환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폐지를 촉구하는 문구가 붙었다. 개미들이 조문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들의 계좌였다.
정점 대비 10조 증발.. -70%까지 깨진 계좌들

분노에는 숫자가 있다. 증권가 집계에 따르면 28일 기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운용자산은 주가 하락과 ‘음의 복리 효과’가 겹치며 정점 대비 9조8000억 원이 증발했고, 상장 이후 매수 시점별 평가손실은 -59%에서 -70%에 달했다. 이날 코스피가 또 5.98% 폭락한 것을 감안하면 손실은 더 불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시각은 더 충격적이다.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기관투자자 대상 보고서에서 한국 자산 기초 레버리지 ETF 시가총액이 지난달 22일 525억 달러에서 최근 190억 달러로 급감했다며, 이후 유입된 신규 자금까지 감안한 국내 개인투자자의 누적 손실을 약 56조3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연말 전에 시가총액이 더 쪼그라들 수 있다는 전망도 붙였다.
“송구하다”.. 처음으로 고개 숙인 당국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는 “금융위와 금감원이 빚은 인재 아니냐”는 질타가 쏟아졌고, 금융수장들은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금융당국이 최종 책임자로서 국민 신뢰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증권신고서 수리 시점에 변동성이 확대되는 상황이었다. 일정 부분 책임을 통감한다.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다만 상품 도입을 주도한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AI 투자 불확실성과 중국 반도체 추격, 반도체 투톱의 높은 증시 비중 등 복합 요인을 들어 레버리지 ETF에 모든 책임을 돌려선 안 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긴급회의 소집.. 사과 다음이 문제다

이날 저녁 구윤철 부총리와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두 금융수장이 참여하는 긴급 시장상황점검회의가 소집돼 이틀 연속 폭락에 대한 대응책이 논의됐다. 예탁금 상향 조기 시행에 이어 추가 대책이 예고된 상태다.
그러나 근조화환이 묻는 것은 대책의 속도가 아니라 책임의 소재다. 만든 책임, 걸러내지 못한 책임, 늦게 대응한 책임. 56조 원짜리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