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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한 자루도 못 만들던 나라가”.. 한국이 단 ’50년’ 만에 방산 강국이 된 비결

이란 전쟁으로 방공망이 뚫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지난 4월 한국에 천궁-Ⅱ 조기 공급을 요청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자료 기준 지난해 한국의 무기 수출 점유율은 6.0%로 미국·프랑스·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4위다. 6·25전쟁 때 총과 포를 전부 미국에 기대던 나라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시작은 ‘미군이 떠난다’는 공포

출발점은 위기였다. 1968년 1·21 청와대 습격 등 북한 도발이 잇따르던 와중에 1969년 미국이 닉슨 독트린을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를 밀어붙였다. 박정희 정부는 1970년 8월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세웠다.

이듬해 11월 대통령은 ADD에 연말까지 기본 화기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른바 ‘번개사업’이다. 소총·박격포·지뢰 등 6개 병기를 미군 무기를 뜯어 역설계하며 몇 달 만에 시제품으로 만들었고 1972년 첫 국산 병기가 나왔다.

방산과 중화학공업을 한 몸으로

시제품은 만들었지만 양산할 공장이 없었다. 정부는 1973년 군수조달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방산업체를 지정·지원하고 같은 해 중화학공업 육성을 선언했다. 당시 정책을 이끈 오원철 경제2수석은 훗날 국가전략사업이 1971년 방위산업, 1973년 중화학공업이었다고 회고했다. 철강·기계·조선·자동차 산업이 곧 무기 산업의 기반이 되도록 설계한 것이다.

1974년 시작된 전력증강계획 ‘율곡사업’은 군이 국산 무기를 대량으로 사주는 내수 구조를 만들었다. 이를 발판으로 1980년대 후반 K1 전차, 1990년대 후반 K9 자주포가 나왔다. 오늘날 K2 전차를 철도차량 업체 현대로템이 만드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산업과 방산을 함께 키운다’는 50년 전 설계의 결과라는 평가다.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결정적 순간은 2022년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켜본 폴란드가 K2·K9·FA-50·천무를 한꺼번에 사들이며 그해 방산 수출 계약은 173억달러로 전년의 2.4배, 역대 최대를 찍었다. 폴란드 국방장관은 기술·가격·도입 시기를 종합할 때 한국 무기가 가장 적합했다고 했다.

2018년 오만 사막에서 튀르키예 알타이 전차와 겨룬 K2가 앞섰고, 독일이 파워팩 공급을 통제하자 튀르키예는 2023년 한국산 파워팩을 사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 전쟁이 한국 방산의 힘을 보여줬다며 그 매력을 ‘미국산보다 싸고 훨씬 빠른 납품’으로 요약했다. 수출은 2023년 130억달러, 2024년 96억달러, 2025년 154억달러로 널뛰면서도 상위권을 지켰다.

반세기 역전극의 다음 장

과제도 분명하다. 앞서 살펴봤듯 올해 수출 수주는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알려졌고, 고객들은 완제품 대신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을 요구한다. 천궁-Ⅱ도 미국·유럽의 구매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군이 떠난다’는 공포에서 시작한 50년이 ‘싸고 빠른 무기’로 결실을 맺었다면, 다음 시험은 첨단 기술과 현지화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총 한 자루 못 만들던 나라의 역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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