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1987년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를 덮으려던 경찰의 그 거짓 발표는, 국가폭력의 시대를 상징하는 한 문장으로 남았다. 그 시대에 훈장을 받았던 이들의 포상이 수십 년 만에 무더기로 박탈됐다.
정부는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1회 국무회의에서 ‘반헌법적 행위자 및 간첩조작 사건 관련자 서훈 취소안’을 심의·의결했다. 취소 대상은 총 167명이 받은 훈장·포장·표창 198점에 달한다.
‘탁 치니 억’의 주인공들, 훈장을 내려놓다

취소 명단에는 그 거짓 발표의 당사자들이 포함됐다. 박종철 사건 은폐를 주도한 남영동 대공분실 총책임자 박처원 전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장은 녹조·홍조근정훈장과 대통령표창 2건 등 4건을 모두 잃었고,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의 포상도 취소됐다.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 전 경감의 국무총리표창도 박탈됐다. 김근태 고문 사건의 가해자로 알려진 백남은·윤재호 등도 명단에 올랐다. 국가를 위한 공로에 주어져야 할 포상이 고문과 조작의 손에 쥐어져 있었던 셈이다.
167명 198점.. 취소의 근거

이번 취소는 크게 두 갈래다. 먼저 12·12 군사반란과 5·18 진압 등 1980~1981년 신군부 계엄 업무 가담자 76명의 무공훈·포장 76점이다. 조사 결과 이 중 42명은 ‘전투에 준하는 직무수행’ 같은 수여 요건에 해당하는 공적 자체가 확인되지 않았고 국무회의 심의도 거치지 않았으며, 나머지 34명은 사법부가 해당 계엄을 ‘헌정질서 파괴 내란 행위’로 확정한 만큼 공적이 될 수 없다고 판단됐다.
다른 한 갈래는 1960~1990년대 간첩조작 사건 관련자 91명의 포상 122점이다. 남민전 사건, 재일동포 간첩 사건, 보성 가족 간첩단 사건 등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되고 불법체포·가혹행위가 공식 확인된 사건들이다.
“억울한 훈장, 계속 찾아낸다”

이번 조치는 이재명 정부 들어 세 번째 대규모 포상 취소다. 지난 1월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 관련자 등의 훈장을, 3월에는 12·12 가담자 무공훈장을 박탈한 바 있다.
정부는 앞으로도 부적절한 포상을 발굴해 지속적으로 취소하겠다고 밝혔고, 경찰청은 창설 이후 수여된 정부포상 약 10만 건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탁 치니 억’이라는 거짓말이 나온 지 39년, 그 시절의 훈장들이 하나씩 회수되고 있다. 늦었지만, 국가의 이름으로 준 상을 국가의 이름으로 거둬들이는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