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가 열리고 주식이 거래되는 여의도는 60년 전만 해도 비만 오면 강바닥이 되던 모래벌판이었다. 그 여의도를 만들기 위해 서울시는 1968년, 사람이 살던 멀쩡한 섬 하나를 폭약으로 날려버렸다. 지금은 철새들의 섬이자 람사르 습지로 남은 밤섬 이야기다.
‘너벌섬’이라 불리던 버려진 땅

여의도는 원래 한강이 쌓아 올린 거대한 모래톱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가축을 풀어놓던 방목지였고, 여름 큰물이 지나가면 활주로까지 물에 잠기는 ‘강의 땅’이었다. 1916년 일본군이 비행장을 만들면서 처음 쓸모가 생겼고, 해방 뒤에는 공군이 처음 둥지를 튼 곳이기도 했다.
반면 바로 옆 밤섬은 바위가 받쳐주는 단단한 섬이었다. 고려 때는 귀양지, 조선 때는 배 만드는 기술자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폭파 직전까지 62가구 443명이 어업과 도선업으로 생계를 잇고 있었다.
돌도 돈도 시간도 없었다

1960년대 후반 서울은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인구로 집 지을 땅이 바닥났다.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은 ‘음지를 양지로’라는 구호 아래 한강 변 미개발지에 눈을 돌렸고, 1967년 9월 한강개발 3개년 계획을 내놓은 뒤 같은 해 12월 여의도 공사의 첫 삽을 떴다.
문제는 곧바로 드러났다. 둑을 쌓으려면 돌이 필요한데 여의도 바닥은 온통 모래였고, 시 금고는 바닥이라 외부에서 돌을 사 올 돈이 없었다. 공사는 장마 전에 끝내야 했다. 여기에 건설부는 홍수 피해를 막으려면 물길 폭을 충분히 확보하라는 조건까지 달았다. 그 물길 한가운데를 막고 선 것이 밤섬이었다.
걸림돌을 재료로 바꾼 발상

서울시의 답은 밤섬 폭파였다. 섬을 없애면 물길이 넓어져 건설부 조건을 충족하고, 섬에서 나온 돌과 자갈은 그대로 둑 재료가 된다. 주민들은 1968년 1월 강 건너 마포 창전동 와우산 기슭으로 집단 이주했고, 2월 10일 오후 폭파가 시작됐다. 서울시는 이 섬에서 잡석 11만4000㎥를 캐내 여의도 제방을 쌓았다.
그해 6월 1일, 둘레 7.6㎞의 둑 ‘윤중제’가 넉 달도 안 돼 강 한복판에 완성됐다. 여름 장마에 둑이 버텨내면서 수백 년간 비만 오면 사라지던 땅이 처음으로 물 위에 남았다.
폭파된 섬은 더 크게 돌아왔다

정작 새 땅은 처음에 아무도 사려 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1971년 엘리베이터와 중앙난방을 갖춘 시범아파트를 먼저 지어 보여준 뒤에야 땅을 팔 수 있었고, 이후 국회의사당과 증권거래소, 방송사가 차례로 들어섰다. 아무도 갖지 않겠다던 땅이 모두가 갖고 싶은 땅이 된 것이다.
깎여 나갔던 밤섬 자리에는 1980년대부터 다시 모래가 쌓였고, 지금은 폭파 전보다 훨씬 큰 섬으로 부활해 사람 출입이 금지된 철새 도래지가 됐다. 다만 이 개발은 수리 계산 없이 유수지를 메웠다는 건설부의 반대를 대통령 재가로 밀어붙인 결과였고, 500년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점도 함께 기억할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