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 복무 중 모은 2000만 원이 한때 3억 원이 됐다가, 4주 만에 거의 사라졌다. 로이터통신이 20일 서울발 기사에서 소개한 24세 투자자 이모 씨의 이야기다. 이씨는 증권사 앱의 버튼 하나로 5배 레버리지를 일으켜 자산을 불렸지만, 최근 반도체주 폭락과 함께 원금 대부분을 잃었다. 그는 “말 그대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라고 토로했다.
로이터가 이 사례로 조명한 것은 한 청년의 투자 실패가 아니라, 한국 청년 세대가 고위험 투자로 내몰리는 구조다.
연봉 14년치 집값이 만든 ‘유일한 길’

로이터는 투자 열풍의 뿌리로 집값을 지목했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직장인 연봉의 약 14년치에 달하면서, 청년층이 저축과 월급만으로는 주거 사다리에 올라설 수 없다고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이씨도 “부동산을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꼈다”며 “주식 투자가 유일한 구원의 길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집으로 가는 문이 닫힌 세대에게 주식과 가상자산은 선택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자산 증식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여기에 단기 고수익 기대가 얹히며 빚과 레버리지가 빠르게 불어났다는 분석이다.
한 달 새 무더기로 잘려나간 청년 계좌

피해는 청년층에 집중됐다. 금융투자협회 집계 기준 이달 1~13일 강제청산 규모만 4519억 원에 달했고, 외신 등에 따르면 최근 한 달 강제청산된 계좌의 62%가 20~30대라는 집계도 전해졌다. 신용융자 잔액은 지난달 24일 38조6300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찍은 상태였다.
기름을 부은 것은 지난 5월 말 상장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였다. 반도체 기대가 정점이던 시점에 하루 수익률 2배를 좇는 상품이 풀리며 개인 자금이 쏠렸고, 주가가 급락하자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 상품은 등락이 반복되면 복리 효과로 손실이 커지는 구조라 장기 보유에 특히 불리하다.
기회의 확대였나, 함정이었나
금융당국은 피해가 확산되자 지난 16일에야 신규 상장 잠정 중단과 예탁금 상향 등 보완책을 내놨다. 출시 두 달도 안 돼 제동이 걸린 셈이라, 한 시장 전문가는 “당국이 상품 출시가 지나치게 성급했음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집값에 좌절한 청년에게 고위험 상품의 문을 열어준 것이 기회의 확대였는지, 더 깊은 수렁으로 이끈 함정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은 커질 전망이다. 분명한 것은 이씨 같은 청년들이 ‘한탕’을 노려서가 아니라, 다른 사다리가 보이지 않아 그 문으로 들어갔다는 점이다. 청년들이 인생을 걸 곳이 레버리지 버튼밖에 없는 사회라면, 문제는 버튼이 아니라 사다리 쪽에 있다는 물음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