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대치 중인 필리핀이 48조 원짜리 군 현대화 계획에 시동을 걸었다. 그 첫 물량 가운데 하나로 한국산 대전차 미사일이 필리핀 육군에 인도됐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LIG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LIG D&A)는 필리핀 육군에 대전차 미사일 ‘현궁(AT-1K Raybolt)’ 초도 물량 납품을 완료했다. 필리핀 군사매체 더내셔널디펜스가 지난달 31일 보도한 내용으로, 초도 물량은 발사기 5문과 미사일 10발이다. 2024년 11월 필리핀 육군과 맺은 시험 구매 계약에 따른 것이다.
10발로 시작해 48조를 노린다

숫자만 보면 소박하다. 그러나 이 계약의 성격은 ‘시험 구매’다. 운용 평가와 전술 교리 확정 절차를 거친 뒤 매년 추가 발주로 이어지는 구조라, 초도 물량은 문을 여는 열쇠에 가깝다.
배경에는 필리핀의 대규모 군 현대화 계획이 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지난해 마지막 단계인 ‘리호라이즌 3’ 계획을 승인하며 향후 10년간 350억 달러, 약 48조 원을 배정했다.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이 격화하면서 해상·공중 방어 역량 확보가 급해졌기 때문이다. 이 예산으로 호위함과 미사일 체계, 레이더 등을 사들일 계획이다.

당장 눈앞의 사업도 있다. 필리핀은 약 450억 원 규모의 중형다목적공격무기(MMAW) 사업을 추진 중인데, 발사대 20기와 유도미사일 40발을 묶은 패키지다. 대전차와 벙커 파괴 능력을 강화하려는 사업이라 현궁의 추가 수주 가능성이 거론된다.
재블린·스파이크와 겨루는 현궁

현궁은 국방과학연구소와 LIG넥스원이 개발한 3세대 보병 휴대용 대전차 유도무기다. 유효 사거리는 최대 2.5㎞, 발사 후 조준을 유지할 필요 없는 ‘발사 후 망각’ 방식이라 쏘자마자 자리를 옮길 수 있어 사수의 생존성이 높다.
장갑이 얇은 전차 상부를 때리는 탑어택 모드와 직사 모드를 모두 지원해 주력전차부터 장갑차, 벙커, 요새화된 진지까지 노릴 수 있다. 미국 재블린, 이스라엘 스파이크와 같은 급으로 평가받는 무기다.
아세안으로 번지는 K-미사일

필리핀은 이미 한국산 함정과 전투기를 운용해 온 나라라 한국 무기체계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그 축적된 이력이 이번 유도무기 도입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음 후보는 인도네시아다. 아세안에서 두 번째로 현궁과 소형무장헬기용 공대지유도탄 ‘천검’ 도입을 저울질하고 있고, 한·인도네시아 정상회담 이후 양국이 대전차 유도무기 공동생산과 유지·보수·정비(MRO), 인력 양성까지 아우르는 협력 확대 의지를 밝힌 상태다. 미사일 10발로 시작된 거래가 아세안 전체로 번질지, 남중국해의 긴장이 K-방산의 판을 넓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