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9월 16일,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하루에만 기준금리를 10%에서 12%로, 다시 15%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300년 역사의 중앙은행이 파운드화를 지키기 위해 벌인 필사의 방어전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영국은 백기를 들었다. 영국 금융사에 ‘검은 수요일’로 기록된 날이다.
파운드를 무너뜨린 공격의 선봉에는 헤지펀드 퀀텀펀드를 이끌던 조지 소로스가 있었다.
소로스가 읽어낸 파운드의 급소
당시 영국은 유럽환율조정장치(ERM)에 묶여 파운드 가치를 독일 마르크에 연동해 높게 유지해야 했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통일 비용으로 고금리를 유지하는 독일과 달리 영국 경제는 깊은 불황이라 금리를 올릴 처지가 아니었는데, 환율만 억지로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소로스와 그의 참모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이 모순이 오래갈 수 없다고 봤다. 퀀텀펀드는 약 10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 매도 포지션을 쌓았고, 다른 투기 세력까지 가세하며 파운드에 매도 폭탄이 쏟아졌다.
중앙은행의 항복, 그리고 1조 원

영란은행은 보유 외환을 쏟아부어 파운드를 사들이고 초강수 금리 인상까지 예고했지만 시장의 매도세를 이기지 못했다. 결국 영국은 그날 저녁 ERM 탈퇴를 선언했고 파운드는 폭락했다.
이 베팅으로 소로스는 약 10억 달러, 우리 돈 1조 원 안팎의 수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정부의 손실은 수십억 파운드로 추산됐다. 이후 그에게는 ‘영란은행을 무너뜨린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세기의 베팅이 남긴 두 얼굴

이 사건은 국가도 시장의 힘 앞에서 무릎 꿇을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역설적으로 ERM에서 풀려난 영국 경제는 이후 회복세를 탔고, 일각에서는 그날을 ‘하얀 수요일’로 부르기도 한다.
다만 소로스의 신화 역시 따라 할 수 있는 공식은 아니다. 구조적 모순에 대한 통찰, 수십억 달러의 실탄,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베팅하는 배포가 겹친 예외적 사건이며, 같은 방식의 통화 투기는 이후 각국 규제와 시장 환경 변화로 재현 자체가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한 사람이 중앙은행을 이긴 날은, 그래서 더 전설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