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9년 겨울, 소련은 45만 대군으로 핀란드를 침공했다. 병력도 무기도 압도적이었던 소련군은 그러나 눈 덮인 숲에서 정체불명의 공포와 마주쳤다. 총성이 울릴 때마다 병사가 쓰러지는데, 쏜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소련군이 ‘하얀 사신(белая смерть)’이라 부르며 두려워한 그 존재는, 키 152cm의 작은 핀란드 농부 시모 해위해였다.
조준경도 없이 세운 500명의 기록

해위해는 겨울전쟁 약 100일 동안 저격으로만 확인 사살 500명 이상을 기록했다. 일부 집계로는 542명, 기관단총 전과까지 더하면 700명대라는 기록도 전해진다.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역대 저격수 최다 전과다.
더 놀라운 것은 방식이다. 그는 조준경을 쓰지 않고 소총의 쇠가늠자만으로 쐈다. 조준경 렌즈가 햇빛에 반사돼 위치가 드러나고, 조준경을 보려면 머리를 더 들어야 해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영하 20~40도의 설원에서 흰 위장복을 입고 몇 시간씩 미동도 없이 매복했고, 입김이 피어올라 들키지 않도록 입에 눈을 머금은 채 기다렸다고 한다.
포병까지 동원한 소련의 ‘사신 사냥’
소련군은 그를 잡기 위해 대응 저격수를 투입하고 그가 있을 만한 지역에 포격까지 퍼부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오히려 투입된 저격수들이 그의 전과에 추가됐다.
그의 시간은 1940년 3월 6일 멈췄다. 소련군의 폭발탄에 왼쪽 턱과 뺨이 날아가는 중상을 입은 것이다. 동료들이 “얼굴 절반이 사라졌다”고 할 정도의 부상이었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그가 의식을 되찾은 3월 13일은 공교롭게도 전쟁이 끝난 날이었다.
전설의 조용한 뒷모습

얼굴 재건 수술을 여러 차례 받은 해위해는 전후 훈장과 함께 국민 영웅이 됐지만, 평생 사냥꾼이자 농부로 조용히 살다 2002년 96세로 눈을 감았다. 비결을 묻는 말에 그가 남긴 답은 단 한마디, “연습”이었다고 전해진다.
압도적 물량의 침략군을 상대로 한 사람이 만들어낸 공포. 해위해의 기록은 전쟁사에서 개인의 기량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그러나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전설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