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 9월 26일 자정 무렵, 모스크바 인근 세르푸호프-15 조기경보 지휘소. 당직 사령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중령의 눈앞에서 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화면에 ‘발사’라는 붉은 글자가 떴다.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쐈다는 위성 경보였다.
곧이어 경보는 5발로 늘었다. 시스템이 표시한 신뢰도는 최고 등급. 규정대로라면 그는 즉시 상부에 ‘미국의 핵 공격’을 보고해야 했고, 그 보고는 소련의 핵 보복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인류의 운명이 걸린 몇 분

당시는 최악의 시기였다. 불과 3주 전 소련이 대한항공 007편을 격추해 미소 관계가 얼어붙어 있었고, 크렘린은 미국의 선제공격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오경보라고 단정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페트로프는 보고 대신 판단을 택했다. 미국이 정말 전쟁을 시작한다면 고작 5발로 시작할 리 없다는 것, 그리고 지상 레이더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시스템 오작동’이라고 보고했다. 훗날 조사 결과 경보의 원인은 구름 위에 반사된 햇빛을 위성이 미사일 화염으로 오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를 구하고 받은 것은 질책

세상을 구한 대가는 초라했다. 그는 포상 대신 근무 일지를 제때 기록하지 않았다는 등의 지적을 받았고, 이후 한직으로 밀려나 조기 전역했다. 상부로서는 시스템의 결함을 인정하는 일이 불편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그의 이야기는 소련 붕괴 후인 1990년대 말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뒤늦게 ‘세계를 구한 남자’로 불리며 유엔에서 표창을 받고 독일 드레스덴상을 수상했지만, 그는 “나는 그저 내 일을 했을 뿐”이라며 영웅 대접을 사양했다. 페트로프는 2017년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버튼과 버튼 사이, 한 사람의 판단

핵전쟁은 거대한 결단이 아니라 오작동 하나, 당직자 한 명의 판단에서 갈릴 수 있다는 것. 그날 밤이 남긴 교훈이다. 인류는 매뉴얼이 아니라, 매뉴얼을 의심한 한 사람 덕분에 1983년 가을을 무사히 넘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