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고로 꼽히는 전차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페루 육군은 그중 한국산을 골랐다. 31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페루 육군 기술운용연구위원회는 신형 전차 150대 도입 사업 평가에서 현대로템의 K2 흑표를 우선 기종으로 추천하고 도입을 건의했다.
경쟁 상대의 면면이 화려하다. 독일 레오파르트2E6, 미국 M1A1·M1A2 에이브럼스, 중국 MBT-3000(VT-4)이 함께 평가대에 올랐다. 세계 3대 방산 강국의 간판 전차를 모두 제치고 K2가 페루 육군의 작전 요구사항을 가장 잘 충족한다는 판단을 받은 것이다.
승부처는 안데스였다.. 실물로 증명한 성능

이 결과를 만든 것은 브로슈어가 아니라 실물이었다. 이달 11일 물류선 ‘글로벌 세이프티’호가 페루 칼라오항에 입항해 K2 전차 2대와 K808 장갑차 6대를 내려놨다. 계약도 맺기 전에 장비부터 보낸 것이다.

무대는 혹독했다. 페루는 해발 수천 미터 안데스산맥과 사막, 험준한 내륙 지형을 동시에 갖춰 전차 엔진과 현수장치를 시험하기에 까다로운 나라로 꼽힌다. K2는 1500마력 디젤 엔진과 차체 높낮이를 조절하는 유기압 현수장치, 120㎜ 활강포와 자동장전장치를 갖췄고 최고 시속 70㎞, 항속거리 450㎞를 낸다. 고산 험지에서 진행된 실차 시험 결과가 이번 권고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T-55 쓰던 나라의 세대교체.. 3800억 산업 투자도 함께

페루 육군에 이번 사업은 반세기 묵은 숙제다. 1970년대 도입한 옛 소련제 T-55와 1960년대 프랑스산 AMX-13 등 수명을 한참 넘긴 장비를 아직도 굴리고 있어서다. K2가 배치되면 페루 지상 전력은 단숨에 중남미 최고 수준으로 올라선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이 내민 카드는 완제품만이 아니었다. 현지 생산 기반 구축을 위한 2억7000만 달러(약 3800억 원) 규모의 산업 투자 계획이 함께 걸려 있다. 기술 이전과 현지 조립·생산을 포함한 장기 파트너십 모델이 방산 자립을 원하는 페루 정부의 기조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현대로템은 페루 국영 방산기업 파메(FAME)와 K2 54대, K808 141대 규모의 총괄합의서를 맺은 바 있다.
폴란드 다음은 남미.. 다만 최종 계약은 아직

물론 이번 권고가 곧 계약은 아니다. 정부 승인과 본계약 협상이라는 관문이 남아 있고, 미국은 F-16 블록70 판매를 제안하며 페루 현대화 사업에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유리한 고지를 잡은 것만은 분명하다. 해군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페루 국영 조선소 시마(SIMA)와 차세대 잠수함 공동 개발을 진행 중이다. 폴란드에서 유럽의 문을 연 흑표가 남미 대륙에서도 결실을 맺는다면, 한국은 중남미 기갑 현대화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