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산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II’를 사기로 한 이라크가 대금 문제를 풀기 위해 재무장관을 직접 내세웠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조기 인도 요청, 필리핀의 도입 검토에 이어 중동에서 다시 천궁-II가 화제에 오른 셈인데, 이번엔 ‘돈’ 얘기다.
27일 이라크 재무부에 따르면 팔리흐 사리 재무장관과 이준일 주이라크 한국대사는 전날 바그다드에서 만나 천궁-II 도입 계약의 자금 조달 방식을 점검했다. 이라크군 참모총장과 양국 군 관계자도 동석해 국방부 조달 일정과 국고 예산 집행을 연계하는 방안을 협의했다.
왜 재무장관이 나섰나

양국은 대금 지급 일정과 법적 틀, 국고 집행 절차를 구체화해 절차적 지연 없이 계약을 이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사리 장관은 외부 공중 위협으로부터 핵심 인프라를 지키기 위한 방공 현대화가 국가적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고, 한국대사관 측도 합의된 의정서에 맞춰 납품 일정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재무장관이 직접 등판한 배경에는 현지 정치권의 잇단 폭로가 있다. 이라크 의회 안보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지난달부터 언론을 통해 자금 부족으로 천궁-II 2차 중도금 납부가 밀리고 있으며, 대금을 완납하지 못하면 물량이 제3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라크 방공사령관도 의회에서 추가 예산 배정을 요구했다.
인도네시아의 기억

한국 방산업계가 이 소식에 주목하는 이유는 ‘선례’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KF-21 전투기 공동개발 분담금을 수년간 제때 내지 않아 결국 한국이 분담 비율을 낮춰주는 것으로 정리된 바 있다. 이라크 건도 같은 길을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던 만큼, 이라크 정부가 재정 당국 차원에서 해법을 찾겠다고 나선 것은 리스크를 덜어내는 신호로 읽힌다.
LIG 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LIG D&A)는 논란 당시 “이라크 수출 사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계약에 따른 선급금은 정상 지급됐고 사업 진행에 따라 후속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LIG D&A는 2024년 9월 이라크 국방부와 약 3조7000억원 규모로 천궁-II 8개 포대 공급 계약을 맺었다.
아직은 ‘점검’ 단계

다만 이번 회동은 자금 조달 방식을 ‘점검’한 것이지 밀린 대금이 실제 입금됐다는 발표는 아니다. 이란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이라크의 석유 수출이 흔들리면서 정부 재정 자체가 빠듯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라크는 2월 말 이란 전쟁 개전 이후 북부 지역이 반복적으로 공습을 받으며 방공망 공백이 드러난 상태라 도입을 서두를 유인은 크다.
천궁-II는 LIG D&A가 체계종합을 맡고 한화시스템이 레이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대를 담당한다. UAE·사우디·이라크 등 중동 3개국에서 조 단위 계약을 확보한 만큼, 이라크 대금 문제가 매듭지어지는지가 향후 중동 추가 수주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