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성비’와 ‘빠른 납기’로 유럽을 뚫었던 K-방산이 잇달아 고배를 마시고 있다. 폴란드 잠수함, 캐나다 잠수함, 루마니아 장갑차까지 대형 사업 세 건에서 연달아 유럽 업체에 밀리면서, 앞서 국뽕을 걷어낸 K-방산의 실체를 짚은 데 이어 이번에는 유럽 시장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세 번 연속 유럽 업체에 졌다

폴란드 정부는 지난해 11월 약 4조~8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차기 잠수함 사업 ‘오르카’의 사업자로 스웨덴 사브를 선정했다. 한화오션이 유력 후보로 꼽혔지만, 폴란드 국방장관은 “스웨덴이 납기와 기술협력, 특히 발트해 작전 능력에서 가장 좋은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에서도 한화오션은 독일 TKMS에 밀렸고, 당시 “나토 동맹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입장을 냈다.

루마니아 보병전투장갑차 사업은 더 뼈아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지 매체 보도 기준 라인메탈보다 낮은 가격과 최대 80%의 현지화율을 제시했지만, 루마니아 국방부는 지난 5월 독일 라인메탈의 링스를 택했다. 싸고 빨리 주겠다는 제안만으로는 더 이상 결과를 바꾸지 못한다는 뜻이다.
유럽이 원하는 건 무기가 아니라 ‘산업’

업계에서는 유럽의 구매 기준이 바뀌었다고 본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 제안요청서에서 잠수함 성능 외에 산업·경제적 혜택과 국가 전략 활용 방안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무기를 사는 게 아니라 자국에 공장과 일자리, 기술이 남는지를 먼저 따진다는 얘기다.

여기에 EU는 역내 조달을 우선하는 ‘바이 유러피언’ 기조와 방산기금 SAFE를 앞세워 회원국끼리 사고파는 구조를 굳히고 있다. 러시아라는 공동 위협 앞에서 나토·EU 차원의 공동 조달로 규모의 경제를 만들고, 독일·스웨덴 업체들은 생산시설을 늘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K-방산이 파고들었던 ‘납기 공백’을 스스로 메우고 있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폴란드 결과에 대해 “정치·군사적으로 안정적인 파트너를 택했다는 분석이 현지에서도 나온다”고 전했다.
‘패키지 2.0’이 필요하다는 경고

국내에서는 기술이전·현지생산에 그친 기존 패키지를 넘어, 현지에 공장을 짓고 그 안을 한국산 설비로 채우는 ‘플랜트 수출’과 수명주기 전반의 유지·보수(MRO)까지 묶는 이른바 ‘패키지 2.0’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AI·유무인 복합체계, 대드론 등 미래 전장 품목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유럽이 완전히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 크로아티아 천무 계약처럼 나토 회원국 수출은 계속 나오고 있고, 폴란드 K2·K9 후속 물량도 남아 있다. 관건은 유럽이 바뀐 기준을 한국이 얼마나 빨리 따라잡느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