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군함은 미국 안에서만 만든다는 원칙이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미 해군 함정의 해외 건조를 조건부로 허용하는 ‘국가안보 대통령 각서'(NSPM)에 서명하면서다.
법 안 고치고 길을 연 ‘대통령 각서’

미국은 그동안 ‘번스-톨레프슨법’에 따라 해군 함정의 해외 건조를 금지해왔고, 이 법은 한국 조선업계가 미 군함 신규 건조에 참여하는 데 가장 큰 장벽으로 꼽혔다. 이번 각서는 법을 고치는 대신 국가안보에 한해 예외를 인정할 권한을 국방장관에게 위임하는 방식으로 우회로를 만들었다.
해외 건조가 허용되는 함정은 수상전투함과 유류·화물 보급선, 화물수송선 등 3개 유형이다. 백악관 설명자료에는 ‘최대 2척’으로 명시됐는데, 각서 전문상 유형별 각 2척씩 사실상 6척까지 가능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아무나 못 만든다…까다로운 조건의 정체

다만 조건이 붙는다. 미국에 새 조선소를 짓거나 기존 조선소의 소유권 또는 과반 지분을 확보한 외국 업체만 대상이다. 미국인 고용·교육, 본국 기술의 미국 이전, 미국 내 공급망 구축도 요구된다. 초기 물량은 동맹국 조선소에서 만들되 후속 물량은 미국 현지에서 짓는 ‘핀란드 모델’을 따르는 구조다.
조선업계에서 이 조건에 부합하는 기업으로 꼽히는 곳이 한화다. 2024년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현지 생산기지를 확보했고, 최근에는 미국 조선업체 오스탈 USA 인수도 추진하고 있어서다. HD현대는 건조 기술과 납기 능력을 갖췄지만 아직 미국 내 자체 조선소가 없어, 미국 투자 계획을 구체화한다는 방침이다.
마지막 관문은 미 의회

각서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의회가 승인한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각서 자체도 관련 법령과 예산 확보를 전제로 한다고 명시했다.
변수는 남아 있다. 지난달 미 하원은 전투함의 해외 건조에 해군 예산을 쓸 수 없도록 한 2027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을 가결한 반면, 상원 법안은 비전투함에 한해 최대 2척의 해외 건조 예외를 뒀다. 연말까지 이어질 상·하원 협상에서 해외 건조 조항이 얼마나 살아남느냐가 이번 각서의 운명을 좌우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부에 90일 내 조달 계획 제출을 지시한 만큼, 한국 조선업계의 참여 여부도 그 이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