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다시 만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가운데, 두 사람이 마주 앉으면 북핵을 사실상 인정하는 합의가 나올 수 있다는 미국 전직 당국자의 전망이 나왔다. 한국에는 가장 민감한 한미연합훈련 중단까지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핵 프로그램 암묵적 인정 가능성 크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북한 담당 국장을 지낸 앤서니 루지에로는 지난 27일(현지시간)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 기고문에서 “두 사람의 협상에 최소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암묵적 인정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삼기보다 이미 고도화된 핵 능력을 현실적으로 관리하는 쪽으로 목표가 조정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가 꼽은 협상 카드는 세 가지다. 루지에로 전 국장은 “트럼프는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는 평화 조약, 정치·경제적 관계 개선, 한미연합훈련의 영구적 중단을 제안할 수 있다”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나 중립지대를 찾아 김 위원장과 합의에 서명하는 장면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을 극적인 장면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미 축소된 한미훈련

전망이 무게를 갖는 건 최근 흐름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를 대폭 축소하라고 지시해 당초 27일까지 예정됐던 훈련이 21일에 종료됐고, 오는 11월 중국에서 열리는 APEC을 계기로 김 위원장과 만나고 싶다는 희망도 밝힌 바 있다. 루지에로 전 국장은 이를 두고 트럼프 2기에서 가장 놀랍지 않은 전개라며, 놀라운 점은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느냐는 것뿐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미국이 반대급부로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과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 가능한 제한을 반드시 관철해야 하며, 북한이 러시아에서 병력을 철수하고 군사 지원을 중단하는 내용도 합의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30년 협상 베테랑”

루지에로 전 국장은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많은 이들이 북한을 낙후된 은둔의 왕국으로 보지만, 북한은 미국과 30년 넘게 협상하며 대체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비판을 받겠지만 이전 행정부와 달리 실현 가능한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은 평가받아야 한다며 대북 접근을 옹호했다.

이 전망은 어디까지나 전직 당국자의 개인 견해로, 미 행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합의는 한국의 안보 부담을 키운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나올 수밖에 없고, 한미훈련 조정은 동맹국인 한국 정부와의 협의 없이는 진행되기 어렵다. 북한이 실제로 대화에 응할지, 응하더라도 어떤 조건을 들고나올지 역시 아직 알 수 없는 변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