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계도 한 장 없이 시작한 도전이 마침내 완성됐다. 방위사업청은 29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에서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의 체계개발 종결 기념식을 열었다. 2015년 12월 개발 착수 이후 10년 7개월,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 손으로 첨단 전투기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2001년부터 따지면 25년 만의 마침표다.
1600번 날아 단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기록이 압권이다. KF-21 시제기 6대는 2022년 첫 비행 이후 42개월간 1600여 회의 고난도 개발 비행시험을 수행하며 단 한 건의 사고도 내지 않았다. 공대공 미사일 실사격, 국내 최초 공중급유 시험 같은 위험한 관문을 다 거치고도 무사고다.

이 기록의 무게는 비교하면 드러난다. 전투기 개발 역사에서 시제기 추락은 통과의례처럼 여겨져 왔다. 미국조차 F-22의 원형인 YF-22가 1992년 시험비행 중 추락했고, 여러 명작 전투기들이 개발 과정에서 시제기와 조종사를 잃었다. 신생 개발국 한국이 첫 초음속 전투기 개발에서 무사고 완주를 해내자, 국내외에서 세계 전투기 개발사에 유례가 드문 대기록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745개 관문 통과.. ‘전투기’라는 자격증

KF-21은 지난 5월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고, 6월에는 기체 구조부터 무장 통합, 전자시스템까지 감항인증 기준 전 항목을 충족해 최초 형식인증을 획득했다. 국가가 ‘이 비행기는 전투기로서 안전하고 유효하다’고 공인한 자격증이다.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은 이날 “KF-21의 성공은 개발 기술진의 피와 땀, 그리고 우리 기술력을 믿고 응원해 준 온 국민의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기술 자립을 통한 자주국방으로 대한민국의 저력을 다시 한번 증명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공동개발국인 인도네시아 국방부 관계자도 참석했다.
연구실을 떠나 하늘로.. 다음은 양산과 수출

체계개발 종결로 KF-21은 연구개발 단계를 졸업하고 양산·전력화 단계로 넘어간다. 지난 3월 출고된 양산 1호기는 올해 하반기 공군에 처음 인도되며, 이후 추가 무장 통합과 성능 개량, 수출이 다음 과제다.
미국제 전투기를 사다 쓰기만 하던 나라, 훈련기 면허생산으로 항공산업을 시작한 나라가 4.5세대 초음속 전투기를 자력으로 완성해 세계 여덟 번째 초음속 전투기 개발국 반열에 오른 것이다. 30년 전 백곰 미사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 나라가, 이번엔 하늘에서 같은 일을 해냈다. 보라매는 이제 실전 배치라는 진짜 하늘로 날아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