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제기 6대가 1600회를 날고도 사고 한 건 없었다. KF-21 보라매가 10년 7개월 만에 체계개발을 마치며 세운 이 기록은 세계 전투기 개발사에서도 드문 성과로 꼽힌다. 그런데 정작 전투기를 사려는 나라들이 눈여겨보는 것은 이 숫자가 아니다.
시험비행은 공군 요구성능(ROC)을 충족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일선 부대에서 매일 뜨고 내리며 안정적으로 굴러가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해외 고객이 중시하는 그 항목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진짜 성적표는 ‘가동률’

전투기 전력은 몇 대를 보유했느냐가 아니라 몇 대가 지금 당장 뜰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그래서 구매국들은 성능표 대신 운영 이력을 본다. 실제 부대에서의 가동률, 정비·군수 체계, 조종사와 정비사 교육 방식까지 통째로 따진다.

오는 9월 양산 1호기가 공군에 인도되면 여기서부터 데이터가 쌓인다. 고장 빈도와 내용, 정비 소요 시간, 부품 교체 주기가 기록되고, 국내외 협력업체의 부품 조달이 원활한지, 제작사 도움 없이 일선 정비사가 정비할 수 있는지가 드러난다. 시험비행 조종사가 아닌 평범한 부대 조종사가 첨단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쌓여야 비로소 해외 고객을 설득할 근거가 된다.
100대를 팔지 못하면 남는 것

수출 시계도 급하다. 한국 공군 도입 물량은 최대 120대. 전투기 사업이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통상 200~250대를 팔아야 한다. 계산하면 최소 100여 대를 해외에 팔아야 본전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4.5세대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격전지라는 점이다. F-16을 필두로 라팔, 유로파이터, 그리펜, J-10, JF-17이 이미 실전 경험과 성능개량 이력을 쌓아뒀다. 거액이 드는 전투기 구매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어 검증된 기종이 유리하다. KF-21이 첫 해외 판매 이력을 서둘러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인도네시아는 왜 머뭇거리나

가장 유력한 첫 고객이었던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물음표다. 분담금을 1조6000억 원에서 6000억 원으로 줄이고 공동생산 대신 완제품 직도입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실제 구매 규모와 시점은 확정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는 대통령 공약인 무상급식에 정부 재정의 7%를 투입하며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다만 재정난이라는 설명이 무색하게 다른 무기 구매는 이어졌다. 지난 21일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와 M-346F 경전투기 12대 도입 계약(10억 유로)을 맺었고 헬기 구매 의향서도 함께 체결했다. 인도와는 초음속 대함미사일 계약을 마쳤다. 구매 우선순위에서 KF-21이 밀린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필리핀 다목적 전투기 사업이 첫 시험대로 거론되지만 현지 정부는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무장과 후속 개발까지.. 지금부터가 시작

과제는 더 있다. 현재 KF-21은 공대공 능력은 갖췄지만 공대지·공대해 능력은 경쟁 기종을 앞서지 못한다. 다양한 무장을 대량 탑재하는 방향의 성능 강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이번 개발이 남긴 자산은 분명하다. 독자 설계 자료와 소스코드를 확보해 성능개량을 우리 손으로 할 수 있게 됐고, 미국산 기종처럼 제작사 승인을 기다리며 막대한 비용을 치를 필요도 없다. 노후 F-5 퇴역이라는 숙제도 풀린다. 다만 그 자산이 유·무인 복합체계나 5세대 스텔스로 이어지지 못하면, 10년 7개월의 노하우는 조용히 사라질 수도 있다. 축포가 아니라 계획표가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