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전 종식 후 유럽은 전쟁은 먼 과거의 일이라 믿었다. 국방 예산을 줄이며 병력과 무기를 감축했고, 방산 공장은 문을 닫았다.
독일은 1998년부터 10년간 PZH2000 자주포 345대를 생산했지만 그 이후 단 한 대도 만들지 못했다. 프랑스의 시저 포 역시 월 생산량이 고작 2대에 불과했다.
러-우 전쟁이 깨운 안보 쇼크

하지만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의 환상을 무너뜨렸다. 당장 전방에서 사용할 무기가 턱없이 부족했고, 탄약은 바닥났다.
폴란드는 긴급하게 움직였다. 같은 해 8월 한국 K9 A1 자주포 212대를 주문한 뒤, 단 4개월 만에 24대를 인도받아 최전방에 배치했다. 유럽이 놀란 건 무기 성능 이전에 이 속도였다.
K-방산, NATO 5개국 시장 장악

빠르게 대처한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루마니아까지 총 5개 NATO 회원국이 K9을 선택했다. 총 주문량은 862대에 달한다.
이는 독일이 26년간 만든 PZH2000 자주포의 2배가 넘는다. 폴란드는 대규모 구매 외에도 현지 생산 옵션까지 확보하며 한국과의 거래에 속도를 높였다.
가격과 패키지 경쟁력, 유럽이 외면할 수 없었다

K9 자주포는 대당 가격이 350~400만 달러로 서방 제품보다 수백만 달러 저렴하다. 한국은 연간 100대 이상 생산할 수 있어 ‘즉시 납품’이 가능하다.
또한 단순히 무기만이 아니라 훈련, 기술 이전, 탄약 등 모든 지원이 포함된 종합 패키지를 제공해 유럽이 딱 원하던 조건을 모두 갖췄다.
단일 공급망의 그림자, 새로운 딜레마

하지만 유럽은 새로운 함정에 빠졌다. 무기를 한국 한 곳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표준화 효과로 탄약과 정비가 쉬워지는 반면, 한국의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 수많은 NATO 군대가 동시에 마비될 수 있다.
이는 단일 실패 지점이라는 안보 리스크다. 유럽이 자체 방산 능력을 다시 키우려면 적어도 수년간의 재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빠른 무장은 한국이 유일한 해답인가?

유럽 안보는 지금 거대한 딜레마 앞에 서 있다. 시간과 속도, 저렴한 가격이라는 3박자를 갖춘 K-방산은 유럽 무기 시장에서 빠르게 확장 중이다.
하지만 모든 걸 외국에 의존하는 안보 전략은 언젠가 되갚아야 할 청구서를 남긴다. K-방산의 질주가 유럽의 위기에서 기회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