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핵 능력이 30여 년 만에 “10만배로 증대됐다”고 말한 것을 두고 숫자의 근거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핵 위협의 심각성을 강조하려던 발언이 되레 통일부 수장의 정보 감각을 묻는 역풍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정 장관은 2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린 ‘2026 국제한반도포럼’ 개회사에서 “34년 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플루토늄 90g을 추출했다고 신고했지만,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 57개를 가졌다고 말했다”며 “90g과 57개의 핵탄두는 10만배 차이”라고 했다. 이어 “이 순간에도 북한의 핵 능력은 커지고 있다”며 “완전한 비핵화를 앞세우는 접근은 더는 지속하기 어려운 현실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계산이 안 맞는 ’10만배’

문제는 이 숫자가 어떻게 나왔는지 정 장관이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이 1992년 IAEA에 신고한 플루토늄은 90g, 즉 0.09㎏이다. 이를 10만배로 늘리면 9t에 이르는데, 북한이 그만한 플루토늄을 보유했다고 보는 평가는 없다.
핵탄두 1개에 필요한 플루토늄은 통상 4~6㎏으로 추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57개를 기준으로 하면 총량은 약 228~342㎏이다. 1992년 신고량과 비교하면 2500~3800배 수준으로, 10만배와는 거리가 있다.
통일부 “숫자보다 취지 봐달라”

통일부 당국자는 “10만이라는 숫자가 중요하기보다는 30년 전과 차이가 많이 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취지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정확한 수치라기보다 북핵 고도화의 심각성을 부각하려는 수사(修辭)였다는 설명이다.
정 장관의 발언 취지 자체에 공감하는 시각도 있다. 북한이 핵무력을 헌법에 명시하고 핵물질 생산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완전한 비핵화’만을 전제로 한 접근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문제의식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반복되는 ‘숫자 발언’ 부담

그럼에도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파장은 작지 않다. 정 장관은 지난 3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북한의 제3의 우라늄 농축 시설로 평안북도 구성을 공개 언급해 논란을 빚었고, 이후 미국이 북핵 활동 관련 정보 제공을 일부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은 당시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설명”이라며 문제 삼는 의도를 의심한다고 반박했다.
한 전직 외교안보 고위 관료는 북핵 고도화를 우려한 발언으로 이해되지만 구체적 수치나 정보 사항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북핵 협상 재개를 준비하는 시점에 정부 메시지의 정확성이 곧 신뢰도로 직결된다는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