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육군 차세대 자주포 사업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앞서 최대 2억6290만달러(약 3700억원) 규모 시제품 계약을 따낸 데 이어, 이번 결과가 유럽 방산업계에 남긴 충격이 조명되고 있다. 프랑스·독일·영국·이스라엘의 간판 자주포가 모두 탈락하고 한국 무기가 미군에 들어가게 됐기 때문이다.
서방 자주포 총출동, 남은 건 K9

24일 외신에 따르면 미 육군은 견인포 M777을 대체할 ‘모바일 타격 포병(MTC)’ 사업에서 지난 18일 한화디펜스USA의 K9MH를 선정했다. 시제품 6문을 4년에 걸쳐 시험하고 12문을 추가할 수 있는 옵션이 붙은 계약이다.

경쟁 명단은 서방 자주포의 총출동이나 다름없었다. 프랑스 KNDS는 미국 레오나르도DRS와 손잡고 카이사르를 냈고, 독일 라인메탈 미국법인은 RCH155를, 영국 BAE시스템스는 아처를, 이스라엘 엘빗의 미국법인은 안두릴·오시코시와 함께 시그마를 제안했다.

제너럴다이내믹스도 RCH155 포탑을 얹은 안을 냈다. 미군 사업에 유럽 대형 방산이 미국 업체와 연합체까지 꾸려 뛰어들었는데, 정작 선택은 K9의 차륜형 파생형인 K9MH였다.
미국 땅에서 만드는 한국 무기

이번 결정에는 성능 외에 ‘미국 내 생산’ 능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군은 해외 부품 의존도가 높은 방식보다 미국 영토 안에서 빠르고 안정적으로 대량 생산할 파트너를 원해 왔다. 한화디펜스USA는 앨라배마주 오펠리카에 시험·통합 시설을 열고 미국 내 공급망을 다졌다. 마이클 쿨터 한화디펜스USA 대표는 외신 인터뷰에서 한국의 첨단 제조 공정을 미국에 이식해 미국 본토의 자체 생산 역량을 만드는 것이 핵심 전략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 육군이 크루세이더, ERCA 등 자체 자주포 개발에 잇따라 실패한 상황에서, 호주·폴란드·노르웨이·핀란드·이집트·인도 등 10개국 안팎이 운용하며 검증된 K9의 실적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유럽이 술렁이는 이유

유럽 방산업계의 시선은 복잡하다. 나토가 장비 표준화를 추진하는 와중에 미국이 유럽 핵심 방산 대신 아시아 업체를 골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정을 들여다보면 역설적이다. 폴란드·노르웨이·핀란드·에스토니아·튀르키예 등 나토 회원국 다수가 이미 K9을 쓰고 있어서다. 미국까지 합류하면 나토 안에서 K9의 입지는 더 커지고 유럽 자주포의 자리는 그만큼 좁아진다. 이번 사업의 전체 소요가 최대 498문으로 알려진 만큼 유럽 업체로서는 놓친 시장이 작지 않다.

다만 이번 계약은 시제품 단계로, 4년 동안 야전 평가를 통과해야 본계약 여부가 정해진다. 미국 현지 생산과 부품 공급망을 약속대로 갖추는 것도 관문이다. 유럽 방산이 재도전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서방 자주포가 한자리에 모인 경쟁에서 한국이 이겼다는 사실은, 세계 방산 지도가 대서양에서 태평양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