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1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대 폭등하며 시장이 환호하던 그날, 외국인들은 기이한 움직임을 보였다. 유가증권시장에서 8조 원 넘게 주식을 사들이는 동시에, 주식을 대량으로 빌려 간 것이다.
주식을 빌리는 ‘대차’는 공매도의 첫 단계다. 빌려서 팔고, 주가가 내리면 싸게 사서 갚는 구조라 대차 잔고는 하락 베팅의 선행지표로 불린다. 이날 외국인은 전체 대차 4455만 주 가운데 3237만 주, 72.67%를 쓸어 갔다. 통상 50~55% 수준이던 외국인 대차 비중은 5월 64.6%, 6월 66.9%, 7월 69.0%로 계속 높아져 왔다. 폭등장에서조차 하락에 걸 실탄을 채운 셈이다.
과녁은 삼성전자.. 밀도 높아진 하락 베팅

표적은 대장주다. 거래소 집계 기준 삼성전자 대차 잔고는 7월 1일 7428만 주에서 31일 9466만 주로 한 달 새 27.4% 불었다. 공매도 물량도 7월 초 0주에서 지난달 29일 376만 주까지 쌓여, 2024년 12월 이후 1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주목할 것은 밀도다. 과거 공매도 고점이던 2024년 12월에는 대차 잔고 1억2587만 주에 공매도 380만 주로 비율이 3.01%였는데, 지금은 더 적은 대차 잔고에서 비슷한 공매도가 나와 비율이 4.22%에 달한다.

반면 SK하이닉스는 대차 잔고가 제자리이고 공매도 잔고는 오히려 줄었다. 고점 대비 하락률이 하이닉스 -52%, 삼성전자 -40%로 상대적으로 덜 빠진 삼성전자에 추가 하락 여지가 있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추가 폭락일까, 숏커버링일까

공매도 급증이 곧 폭락 예고는 아니다. 오히려 걸 만큼 걸었다면 남은 것은 되사서 갚는 ‘숏커버링’이라는 반론도 있다. 실제 공매도 잔고가 고점(380만 주)이던 2024년 12월 5일 삼성전자 주가는 전고점 대비 39%가량 빠진 상태였는데, 이후 추가 폭락 없이 횡보하다 이듬해 5월 본격 반등한 전례가 있다. 공매도 강도가 그때(3.01%)보다 높은 지금이 ‘가장 센 공매도의 정점’을 지나는 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항복의 조건.. 실적과 밸류에이션

공매도 세력이 백기를 들려면 반도체 업황 불안이 걷혀야 한다. 이번 주 AMD(5일)와 샌디스크(6일) 실적에서 공급 부족 지속 신호가 나오면 숏커버링발 급반등 가능성이 거론된다.

‘팔 만큼 팔았다’는 지표도 있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46.5%로 2010년 이후 최저이고, MSCI 신흥국지수 내 비중 격차(TSMC 15.4% vs 삼성전자 7.19%)는 2015년 이후 최대로 벌어졌다. 한 증권사는 올해 삼성전자 예상 순이익(311조 원)이 TSMC(124조 원)를 앞서고 PBR은 1.9배로 TSMC(7.5배)보다 훨씬 낮다고 분석했다.
결국 삼성전자를 둘러싼 하락 베팅과 저평가론이 정면으로 맞선 형국이다. 어느 쪽이 항복할지는 이번 주 실적 시즌이 첫 답을 내놓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