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단가 220만 원. 올해 처음 주식 계좌를 열었다는 한 40대 공무원이 SK하이닉스를 사들인 가격이다. 30일 이 종목의 주가는 129만 원대. 손실은 수천만 원으로 불었고, 그는 본전만 회복하면 팔고 다시는 국내 주식에 손대지 않겠다고 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를 시장으로 이끈 것은 확신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주변이 다 하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심리, 이른바 ‘포모(FOMO)’다. 같은 마음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모인 직장 단체 대화방에는 요즘 “같이 울자”, “시간이 걸리더라도 복원될 것”이라는 말이 오간다고 한다.
문제는 그 돈이 ‘있어야만 하는 돈’이었다는 것

이번 폭락이 유독 아픈 이유는 물린 돈의 성격에 있다. 여윳돈이 아니라 이사와 잔금, 학비처럼 날짜가 정해진 생활자금이 상당수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계좌의 마이너스가 곧 삶의 일정표를 흔드는 구조다.
결혼 3년 만에 서울 아파트를 사 내 집 마련을 앞뒀던 30대 직장인이 그런 경우다. 주식을 정리해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고 입주할 계획이었는데, 며칠 새 계좌가 온통 파랗게 물들면서 급전을 알아봐야 할 처지가 됐다. 레버리지 상품도 아니고 우량주와 ETF 위주로 담았는데 이런 일을 겪게 돼 당황스럽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정부가 부동산 자금을 증시로 유도한다고 해서 믿었는데, 이런 급락을 겪고 나니 주식으로 자산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회의가 든다고도 했다.

전세 만기를 앞두고 이사 갈 집의 보증금을 마련하려 투자에 뛰어들었던 20대 회사원의 결말은 더 구체적이다. 비상금으로 두려던 현금까지 밀어 넣었다가 2000만 원가량의 평가손실을 안았고, 결국 직장에서 더 멀고 값싼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다. 폭락이 바꾼 것은 수익률이 아니라 그의 출퇴근 거리였다.
이 밖에도 내년 입주하는 청약 아파트 잔금 일부를 투자금으로 치르려던 30대 직장인, 한 학기 남은 박사과정 학비를 수익금으로 내려던 50대 공무원처럼 계획표가 멈춰 선 사례가 곳곳에서 나온다. 40% 가까웠던 수익률이 어느새 20% 손실로 뒤집혀 있더라는 것이다.
“공포에 던지는 것만은”.. 그러나 정답은 각자 다르다

전문가들은 급락에 놀라 투매에 나서는 ‘패닉 셀링’만은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한 경영학 교수는 시장이 단기적으로 흔들릴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주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기업의 실적과 성장성이라며 긴 호흡의 대응을 강조했다.
다만 이 원론이 모두에게 같은 답이 되지는 않는다. 잔금 날짜와 전세 만기는 주가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폭락이 남긴 교훈이 종목 선택보다 ‘없어도 되는 돈과 있어야만 하는 돈을 구분하는 일’에 가까운 이유다. 계좌에 찍힌 숫자보다 무거운 것은, 그 돈에 걸려 있던 사람들의 계획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