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은 연봉과 안정성으로 ‘신의 직장’이라 불리던 국책은행에서 사람이 빠져나가고 있다. 산업은행은 부산 이전 논의가 본격화한 뒤 5년째 퇴직자가 신규 채용을 웃돌고, 수출입은행은 퇴직자 4명 중 1명이 입사 5년을 못 채우고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실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인력 실태를 분석한 결과다. 산은은 2022년부터 올해 7월까지 682명을 새로 뽑았지만 퇴직자는 792명으로, 순유출이 110명에 달했다. 올해도 7월 말까지 67명을 채용하는 동안 81명이 나갔다.
부산 이전 말 나오자 퇴직 두 배

시점이 눈에 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가 2022년 1월 산은 부산 이전을 공약했고, 국토교통부는 2023년 5월 산은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고시했다. 산은 퇴직자는 2021년 77명에서 2022년 165명으로 두 배 넘게 뛰었고, 2023년 176명, 2024년과 2025년 각각 185명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채용 규모는 큰 변화가 없었는데 퇴직만 급증한 것이다.
수출입은행은 저연차 이탈이 두드러졌다. 2022~2025년 퇴직자 194명 중 재직 5년 미만이 50명으로 25.8%를 차지했다. 수은도 2022년과 2024년 본점 부산 이전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전 논의가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는 불안이 IT 인력과 저연차 직원의 이탈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국은행은 왜 멀쩡할까

비교 대상은 한국은행이다. 지방 이전 논의에서 비켜나 있던 한은은 2021~2025년 671명을 채용하고 626명이 퇴직해 채용이 퇴직보다 45명 많았다. 연간 퇴직자도 2022년 160명에서 2025년 89명으로 줄었고, 5년 미만 퇴직 비중은 10.8%로 수은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억대 연봉’의 매력도 예전 같지 않다.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수은의 1인당 평균 보수는 2021년 1억500만원에서 2025년 1억1400만원, 산은은 1억1000만원에서 1억1600만원으로 올랐다. 상승률은 각각 8.6%와 5.5%로 같은 기간 누적 물가 상승률 13.7%를 밑돌았고, 4대 시중은행 평균 연봉(1억2275만원)에도 역전됐다.
이전 때문만은 아니라는 반론

다만 퇴직 증가를 전부 부산 이전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민간과의 보수 격차, 젊은 세대의 잦은 이직 경향 등 금융권 전반의 변화가 겹쳐 있어서다. 의원실 자료도 이전 논의 시점과 퇴직 증가의 동시성을 보여줄 뿐 퇴직 사유를 집계한 것은 아니다.
김재섭 의원은 “정책금융기관이 새로 뽑아도 퇴직자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실상의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며 “충분한 검토 없이 지방 이전까지 밀어붙이면 기관의 전문성과 정책금융 역량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은 부산 이전은 정권 교체 후 동력이 약해졌지만 완전히 정리된 것도 아니어서, 정부와 국회의 결론이 인력 안정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