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8년 9월 26일, 충남 태안 안흥시험장. 박정희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굉음과 함께 미사일 한 발이 하늘로 솟구쳤다. 대한민국 최초의 지대지 탄도미사일 ‘백곰’이었다. 사거리 180km, 서울에서 평양까지 닿는 거리다.
기술도 산업 기반도 전무하던 나라가 개발 착수 6년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이날 한국은 세계 7번째 지대지 미사일 개발국 반열에 올랐다.
‘기계창’과 ‘측후소’로 위장한 극비 프로젝트

출발은 절박함이었다. 북한이 소련제 프로그 미사일을 들여오고 주한미군 7사단이 철수한 데 이어, 카터 미국 대통령은 아예 주한미군 전면 철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스스로를 지킬 수단이 필요했던 박정희 정부는 1974년 ‘항공공업 육성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미사일 개발을 극비리에 시작했다.
위장은 철저했다. 미사일 연구소는 ‘대전기계창’, 시험장은 ‘안흥측후소’라는 간판을 달았다. 연구원들은 해외에서 자료를 모으고 부품 수천 종을 직접 개발하며 미국제 나이키 허큘리스 지대공미사일을 지대지로 재설계하는 길을 뚫었다.
개발 중단 요구한 미국, 뚫어낸 한국

미국의 눈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미 CIA는 1976년 한국의 미사일 설계도가 거의 완성됐다는 보고서를 올렸고, 주한미군사령관과 주한 미국대사, 국방부 고위 인사까지 국방과학연구소를 찾아와 개발 중단을 요구했다고 개발 참여자들은 회고한다. 핵개발 의심 속에 “탄두는 무엇으로 할 것이냐”는 추궁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개발은 멈추지 않았고, 백곰은 끝내 하늘을 갈랐다. 발사 성공에 카터 행정부가 화들짝 놀랐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듬해 미국의 압박 속에 사거리 180km·탄두 500kg으로 개발을 제한하는 ‘한미 미사일 지침’이 만들어졌고, 이 족쇄는 2021년 완전 폐지까지 무려 42년간 이어졌다.
백곰의 후예들, 오늘의 K-미사일

백곰 자체는 정권 교체 후 연구 인력 대량 해직 등 시련을 겪으며 실전 배치의 꿈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 확보한 기술은 현무 계열 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나아가 우주발사체 개발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설계도 한 장 없이 시작해 견제를 뚫고 만들어낸 첫 미사일.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K-미사일 전력의 족보는, 47년 전 안흥 앞바다의 그 한 발에서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