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시대를 여는 법의 첫 문장은 역설적이게도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정부와 군 소식통에 따르면 국방부는 ‘핵추진잠수함의 획득·운영 및 안전관리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29일 입법예고한다.
특별법은 핵잠 사업의 5대 기본원칙을 규정하면서 그 첫 번째로 “핵무기의 개발·제조·보유 또는 사용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핵물질 전용 또는 비확산 체계의 신뢰성을 저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핵무기 비확산 원칙이 국내 법률에 명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왜 법에까지 박았나.. 세계의 의심에 답하다

배경에는 국제사회의 시선이 있다. 핵잠은 핵무기가 아니라 원자로를 동력으로 쓰는 재래식 무장 잠수함이지만, ‘핵’이라는 글자만으로 한국이 핵무장의 문턱에 다가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미국 조야 일각 등에서 제기돼 왔다. 핵연료 조달의 열쇠를 쥔 미국을 안심시키지 못하면 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정부는 지난 5월 핵잠 기본계획 발표 때 밝힌 비핵 원칙을 선언 수준을 넘어 법률로 격상해 답한 셈이다. 특별법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준수, 국제원자력기구(IAEA) 확인 절차 협조, 방사성 물질로부터의 국민 안전과 환경 보호 등도 원칙으로 담겼다.
브레이크는 빼고 액셀은 달았다

비확산에는 자물쇠를 채우되, 사업 속도에는 날개를 달았다. 특별법은 대형 무기 도입 전 의무 절차인 사업타당성조사에서 핵잠 사업을 제외할 수 있게 했고, 연구개발·시험평가 기간 단축과 원가 산정 특례, 핵연료 확보 지연 등 변수 발생 시 계약 조건을 사후 변경할 수 있는 조항도 담았다.
컨트롤타워로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는 ‘핵추진잠수함전략위원회’를 신설해 시설 입지와 재원 조달 같은 중대 사항을 심의하도록 했다. 국방장관이 부위원장, 해군참모총장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2030년대 중반 1번함.. ‘장보고N’의 시간표

정부가 추진하는 ‘장보고N 사업’은 농축도 20% 미만 저농축우라늄을 연료로 쓰는 8000t급 핵잠을 2030년대 중반까지 진수하고, 2030년대 후반까지 3척을 전력화하는 계획이다. 핵잠은 재래식 잠수함과 달리 사실상 무제한 잠항이 가능해 북한 SLBM 위협 감시의 판을 바꿀 전력으로 꼽힌다.
‘핵무기 없는 핵잠’이라는 좁은 길을 법으로 닦은 한국이 세계 일곱 번째 핵잠 운용국의 꿈에 얼마나 속도를 낼지, 입법예고와 함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