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전쟁 막바지, 미군은 하늘에 기묘한 전단을 뿌렸다. 소련제 최신예 전투기 미그-15를 몰고 귀순하는 공산군 조종사에게 5만 달러, 첫 번째 귀순자에게는 5만 달러를 더해 총 10만 달러를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물라(Moolah) 작전’. 당시 미국 노동자 연봉의 수십 배,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십수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미군 조종사들을 괴롭히던 미그-15의 실물을 손에 넣기 위한 파격 현상금이었지만,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미그기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두 달 뒤, 진짜가 나타났다.
정전 두 달 뒤, 김포에 내려앉은 미그기

1953년 9월 21일 아침, 21세의 북한 공군 조종사 노금석이 평양 순안기지에서 미그-15비스를 몰고 이륙해 그대로 남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그는 17분 만에 김포기지에 도착해 착륙 중이던 미군기와 스칠 뻔한 아찔한 순간까지 넘기며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현상금 전단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진술했다는 점이다. 공산 체제에 대한 환멸로 오래전부터 탈출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몰랐든 알았든 규정은 규정. 미국은 그에게 약속대로 10만 달러를 지급했다.
척 예거가 몰아본 ‘공짜 미그기’

노획된 미그-15는 미군에게 보물이었다. 미국은 기체를 오키나와로 옮겨 음속 돌파의 전설 척 예거 등 최정예 시험비행사들에게 몰게 하며 성능을 낱낱이 해부했다. 베일에 싸여 있던 소련 최신 전투기의 강점과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이 기체는 지금도 미국 오하이오의 공군 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엔지니어 ‘케네스 로우’가 된 청년

노금석의 인생 2막도 영화 같았다. 그는 먼저 월남해 있던 어머니와 극적으로 재회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델라웨어대에서 공학을 공부한 뒤 ‘케네스 로우’라는 이름의 항공우주 엔지니어로 살았다. 보잉 등에서 일하며 대학 강단에도 섰던 그는 2022년 90세로 별세했다.
전단 한 장에 담긴 심리전, 목숨을 건 17분의 비행, 그리고 현상금 10만 달러. 냉전이 만들어낸 가장 극적인 귀순 드라마는 그렇게 역사에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