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란드, 루마니아, 노르웨이에 이어 이번엔 독일이다. 유럽 최대 방산기업 라인메탈의 본고장이자 유럽 방산의 심장부로 꼽히는 독일 시장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LIG 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LIG D&A)가 나란히 깃발을 꽂았다. 러시아 위협에 맞서 국방비를 천문학적으로 늘리는 독일이 한국 방산의 다음 무대가 되고 있다.
27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독일의 국방비 급증으로 한국은 물론 노르웨이·핀란드·호주 등 세계 방산기업들이 독일로 몰려들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LIG D&A, 노르웨이 콩스버그, 핀란드 아이스아이 등은 지난 12개월 사이 독일에 지사를 세우며 급증하는 군비 지출에 대비하고 있다.
라인메탈 출신을 데려온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4월 베를린에 현지 법인 ‘한화 디펜스 도이치랜드(HDD)’를 세웠다. 유럽에서 검증된 K9 자주포, 천무 등 한화의 무기체계를 독일에 알리고 전력 공백을 메우겠다는 구상이다. 알렉스 웡 한화그룹 글로벌 최고전략책임자(CSO)는 “독일은 독일군에 제품을 파는 것뿐 아니라 유럽 전역의 방산 허브로서도 중요한 위치”라며 “기회의 규모를 고려할 때 독일 시장을 깊이 아는 인력과 상주 거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화는 라인메탈에서 10년 넘게 일한 토르스텐 쿠츠를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영입했고, 방산·정계 경력 15~20년의 대관 전문가도 채용했다. 경쟁사 핵심 인력을 데려와 독일 시장을 파고드는 셈이다.
라인메탈과 손잡은 LIG

LIG D&A의 전략은 ‘적과의 동침’이다. 라인메탈과 방공 시스템 합작사를 세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미사일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다. 양사의 역량을 합쳐 다층 방공 체계와 신형 미사일을 공동 개발하고, 유럽 현지에서 개발·생산·판매까지 하는 구조를 만든다. 유럽의 역내 우선 구매 기조를 정면 돌파하려는 포석이다.

이런 진출을 가능하게 한 건 독일의 돈이다. FT에 따르면 독일은 향후 5년간 7000억 유로(약 1130조원) 이상을 국방비로 책정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국방비를 차입 한도에서 제외하고 독일 연방군을 유럽 최강 정규군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독일 당국은 비유럽 업체의 완제품 구매는 꺼리지만, 외국 기업이 현지 공급망에 참여하거나 라인메탈 같은 자국 기업과 합작하는 데는 열려 있다. 한국 기업들이 ‘수출’ 대신 ‘현지화’를 택한 이유다.
남은 과제

다만 장밋빛만은 아니다. LIG의 합작사는 단기적으로 라인메탈이 과반 지분을 갖는 구조라 주도권에 한계가 있고, 유럽연합(EU)이 2035년까지 유럽산 무기 구매 비중을 65%로 높이겠다고 밝힌 만큼 ‘한국산’ 꼬리표가 언제든 장벽이 될 수 있다. 콩스버그, 아이스아이 등 경쟁자도 같은 시장을 노린다.
독일 진출은 유럽 방산 공급망 안에 한국 기업이 자리를 잡느냐를 가르는 시험대다. 폴란드에서 증명한 가격과 속도를 독일에서도 통하게 만들 수 있을지가 K-방산의 다음 관문이다.
